[호주동아] 호주동아가 만난 사람 – (주)에이산 장영식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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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19
“꿈을 꾸고 포기하지 않으면 기회는 온다”

일본 면세점업 1위, 직원 130여명 2300억원 매출

“정직하게 포기하지 않고 버티면 기회는 옵니다. 잘 될 때가 있으면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인생이나 사업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오늘을 견뎌내야 내일이 옵니다.”

월드옥타 시드니지회의 차세대무역스쿨에서 13일 ‘선배가 들려주는 사업 경험담과 옥타정신’을 주제로 강연한 (주)에이산의 장영식 회장(45)은 국제금융위기부터 지난해까지 일본에 불어닥친 경제불황을 견뎌내며 이런 교훈을 터득했다.

장 회장은 “어려운 4년을 견뎌내고 나니 이제는 겁낼 것이 없다. 내공이 쌓인 것이다. 일본에서 20년 동안 거짓말 않고 정도를 걸어왔더니 사람들이 신뢰를 하게 되더라. 저는 한번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이 떠나지 않는한 버리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20대 나이에 단돈 300만원을 갖고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면세점업계 정상에 오른 (주)에이산을 일군 자수성가형 사업가 장영식 회장을 12일 월드옥타 시드니지회 강태승 회장의 킬라라 자택에서 만났다.

현재 일본 동경에 본사가 소재한 에이산은 130여명의 직원을 보유하고 올해 2300억원 매출을 예상하는 중견기업이다. 면세점, 수출입, 정부 조달업, 제조업, 인터넷 판매업에 종사하고 있다.

2만여 종류를 취급하는 면세점은 일본 국제공항에 직영점 4개, 프랜차이즈 4개 및 시내에 4개 매장을 포함해 전국에 12개 운영되고 있으며, 가전제품을 일본 정부에 조달한다. 전기 자전거와 온수 비데를 생산하는 제조업도 올해부터 시작했다.
장 회장은 동경월드옥타 지회장, 제일민단 신주쿠지부 부의장, 동경한국학교육성회(PTA) 총회장을 역임했고, 현재 재일한국동경상공회의소 상임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300만원 유학생, 사업에 눈뜨다 = 전남 순천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장 회장은 지방 국립대에서 기계공학과를 전공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국방의 의무를 마친 후 교수님의 조언으로 미국에서 파괴공학를 공부하기 위해 유학을 준비했다.
그러던 중 부친이 300만원을 주면서 집을 나가라는 불호령을 내렸다. 그 돈을 들고 유학 공부를 위해 서울로 올라갔다. 하지만 우선 생활비라도 벌어야 했다. 결국 전봇대의 선원 모집 광고를 보고 인천에서 꽂게잡이 어선을 탔지만 2-3개월 고생했는데 달랑 3000원만을 손에 쥐고 나와야 했다.

미국 비자를 기다리면서 신문배달을 하다가, 일본 비자가 잘 나온다는 소문을 듣고 신청했다. 일본어도 모르는 청년이 일본행을 감행한 것이었다. 일본에서의 생활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대학원에 들어가기 위해 돈을 벌어야만 했고 일본어도 배워야만 했다. 새벽 2시 반부터 6시 반까지 신문배달을 하고 오전 9-12시에 일본어 학교를 다녔다. 저녁시간엔 식당에서 불판을 닦았다.

그런데 갑자기 일본에 쌀 파동이 일어났다. 장 회장은 태국과 필리핀의 쌀이 수입되는 것을 보고 한국 쌀을 수입해 리어커로 배달해주면서 재미를 봤다. 그리고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 가요 테이프가 고가에 팔리는 것을 알고 한국의 지인을 통해 대중 가수의 테이프 10만개 정도를 수입해 방안에 쌓아놓고 매장에 팔았다. 수입원가의 5배 이상의 이윤을 남겼다. 표고버섯은 수입했다가 손해를 약간 봤다.

일본 아키아바라 전자상가에 가서 워크맨을 구입하면서 협상을 하면 가격을 깎아준다는 사실을 체험하고 ‘가장 싸게 사서 가장 비싸게 팔면 되겠구나’하고 생각하게 됐다.

결국 아키아바라에서 TV를 사서 다른 매장에 이윤을 조금 남기고 공급해주는 도매업을 시작했다. 처음엔 트롤리를 배달에 이용하다가 나중에 리어카, 자동차로 바꾸었다. 주문량이 늘면서 아르바이트생도 고용하게 됐다. TV는 물론 다른 제품도 취급하라는 조언을 들으면서 무역업에 욕심이 났다. ‘Smiling Trading’이라는 상호의 명함을 파서 홍콩으로 건너갔다. 일본 제품을 홍콩에 수출하는 것이었다. 어느덧 아키아바라 물건의 50% 정도를 매입하는 ‘큰 손’으로 성장했다.

어느날 전자제품 대기업 아이와의 부장이 찾아와 직접 거래를 제안했다. 그러기 위해선 약 1억원의 자본금이 들어가는 주식회사가 필요했다. 결국 영주권도 없는 유학생은 아키아바라의 제품 공급업자가 담보를 대신 서주면서 은행으로부터 융자를 받는데 성공했다. (주)에이산기계교역이 1995년 6월 3일 창립하게 된 것이다. 장 회장이 일본에 들어간지 1년 반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장 회장은 도매업의 마진이 작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소매업에 진출한다. 중국인 한국인 관광객이 일본 아키아바라로 대거 유입되는 것을 보고 면세점업을 시작했다. 사업 초기 6개월간 약 6억원의 적자를 보고 나서야 한국과 중국의 여행사 대상 영업에 나섰다. 이후에 조달업체 직원을 스카우트해서 일본 정부 조달업에도 손을 댔다.

▶“5년 후 전기 자동차 생산 목표” = 이런 와중에도 그는 와세다대학 경영대학원(MBA) 과정을 수료했다. 하지만 2008년 하반기부터 국제금융위기, 조류 독감, 일본과 중국 간 센카쿠열도 분쟁, 동일본 대지진이 연이어 터지면서 파산 직전까지 몰렸다. 12개 거래은행을 쫒아다니면서 설득해서 법정관리에 들어갈 위기를 넘겼다. 자살의 유혹을 받은 것도 이때 였다. 그나마 인터넷 판매업이 어려운 시기를 버티게 해준 효자 노릇을 했다

위기 뒤에 기회가 왔다. 아베노믹스로 엔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매출은 고공행진에 들어갔다. 올 7월 매출이 200억원을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장 회장은 기업의 안정성을 강화하기 위해 제조업에도 진출했다. 올해부터 출시한 전기 자전거가 첫 작품이다.
그는 “경쟁사와 가격이 동일하면 성능이 훨씬 좋고, 성능이 동일하면 가격이 훨씬 낮고, 가격과 성능이 비슷하면 디자인이 특출한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향후 5년 계획으로 전기 자동차를 생산하는 것이 목표다. 그는 “꿈을 가지고 있어야만 기회가 온다”고 강조했다.
그는 월드옥타에 대해 “옥타 바이러스에 감염됐다. 내 가족과 같다. 해외 한인들이 사랑하는 꿈의 조직이 되길 바란다”며 “전세계 한민족 네트워크를 형성하면 혜택은 우리 후손들이 볼 것이다. 결국 자식을 위한 씨를 뿌리는 것”이라고 밝혔다.

권상진 기자
jin@hoj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