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삼성을 설득한 남자, 열정을 수용한 삼성

By: | Tags: | Comments: 0

지난 3월 일본 전기자전거 시장에 무서운 신예가 등장했다. 일본 면세점 전문 업체 에이산(永山)이 만든 `갤럭시파워`다. 기존 전기자전거와 견줘 성능은 손색없다. 1회 충전으로 최대 40㎞까지 달린다. 충전 가능 회수도 1000번이 넘는다.

갤럭시파워의 가장 큰 장점은 가격이다. 일본에서 어지간한 전기자전거는 10만~13만엔 수준, 110만원에서 143만원 정도다. 우리나라 전기자전거도 100만원 안팎이다. 갤럭시파워는 5만9800엔, 약 66만원에 불과하다. 파나소닉과 브리지스톤, 야마하가 주도하는 일본 전기자전거 시장에서 에이산은 갤럭시파워로 10% 시장 점유율을 올리겠다고 선언했다.

에이산은 갤럭시파워 가격을 어떻게 낮췄을까. 비결은 배터리다. 장영식 에이산 회장의 집념이 세계 최고 수준의 배터리를 합리적 가격에 공급받도록 만들었다. 장영식 사장은 싼 배터리를 찾기 위해 중국 각지를 다녔다. 중국 배터리는 품질이 눈에 차지 않았다. 그 때 지인의 소개로 삼성SDI를 만났지만 협상 자리에 앉기조차 힘들었다. 세계 이차전지 1위 삼성SDI 입장에서 장 회장이 눈에 찰리 없었다.

장 회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가격만 낮추면 전기자전거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한다”며 “좋은 제품을 누구나 살 수 있도록 만드는 기술 자체가 사회공헌”이라고 계속 삼성SDI를 두드렸다. 6개월 동안 끈질긴 설득을 삼성SDI는 수용했다. 삼성이라는 이름에 맞게 영하 20도에서 영상 60도까지 잘 작동하는 자전거 전용 배터리를 만들었다. 테스트에만 반년을 투자했다.

장 회장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배터리에 `SAMSUNG SDI` 사명을 새겨달라고 부탁했다. 무명의 에이산에게 삼성SDI 사명은 전기자전거 신뢰를 단번에 높여주기 마련이다. 주연이 아닌 조연에 충실해야 하는 삼성SDI는 단칼에 거절했다. 장 회장은 “이름을 달 수 없다는 말은 제품에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의미”라며 삼성SDI의 자존심을 공략했다.

품질에 절대적 자신을 가진 삼성SDI는 통 크게 사명 인쇄를 허락했다. 갤럭시파워라는 이름도 삼성전자 스마트폰 `갤럭시` 시리즈를 연상케 만든다. 이래저래 장 회장이 1년 넘게 노력한 끝에 싸고 믿을만한 전기자전거가 탄생했다.

`안되면 죽는다`는 장 회장의 경영 철학은 일본 현지에서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노점상으로 출발해 유통에서 잔뼈가 굵은 그는 면세점 사업 초기 “고급 브랜드가 없는 점포에 누가 오겠는가”라며 소니와 시세이도 문을 두드렸다. 소니는 5년, 시세이도는 8년 만에 장 회장과 거래를 텄다.

결국 무일푼으로 일본에 건너가 내로라하는 회사를 만든 경영자의 열정이 삼성이라는 세계 굴지의 기업을 설득한 셈이다. 장 회장의 스토리는 스타트업에 적지 않은 교훈을 준다. 아무리 아이디어가 좋아도 열정과 끈기가 없다면 성공하기 힘든 법이다. 주변 환경을 탓할 시간에 장 회장은 끊임없이 움직였다.

여기에 하나 더 삼성SDI의 진정성도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아무리 CEO라도 속된 말로 `듣보잡` 기업이면 무시하기 마련인데 삼성SDI는 귀를 기울여줬다. 갤럭시파워가 매출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지만 삼성SDI는 에이산을 믿고 도왔다. 두 회사의 협력 관계는 진정한 대중소기업 상생의 모범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